하나님의교회 할례와 침례[패스티브닷컴]
[침례 ]
할례와 침례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성경에서 할례는 아브라함 시대에 처음 행해졌다.
출처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세기 17:9~11)
B.C. 2,000년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중다한 후손을 약속하시고 증표로 그에게 할례를 명령하셨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후 8일째 되는 날 할례 의식을 거행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할례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행해야 하는 모세의 율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할례가 가지는 의미는 선민으로서 이방인과 구별된다는 점이 가장 크다.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도 내포돼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당신의 뜻을 알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할례의 중요성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그중 유월절을 지키기 전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출애굽기 12:43~44)
첫째, 유월절은 하나님의 백성만이 지킬 수 있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은 오직 할례밖에 없었다. 해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할례를 행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할례와 유월절은 불가분의 관계로 할례를 행하지 않고는 유월절을 절대로 지킬 수 없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여호수아 5:2~5)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망했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시는 장면이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를 행해야만 했다. 이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광야 생활 중에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유월절이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이 전제가 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다음 해에는 유월절을 지켰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처절한 광야 생활로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다. 먹을 것도 귀했지만 적들로부터 생명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유월절을 행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원망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은 손에 잡힐 듯했지만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성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광야 생활 40년 중 38년간은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다. 그것은 곧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때까지 할례 없는 자가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할례 없는 자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이며 이방인으로 하나님에 대한 예의도 없는 미개인과 같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없이 기뻤다. 이는 곧 유월절을 지키고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근 40년간 유보되었던 할례 의식을 재시행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었다.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여호수아 5:8~12)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한 후 유월절을 지키고 그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할례라는 의식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구약에는 할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신약에서는 세례(침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할례를 두고서 또 다른 정결을 받는 예식을 주셨는가. 그 이유는 율법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모세의 율법에 속한 할례는 과연 어떤 좋은 일의 그림자가 되는 것인가. 할례의 참 형상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28~29)
표면적 유대인이란 유대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민족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 또한 표면적 유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들의 과오를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결국 성육신하신 하나님께 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알고 있기에 표면적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구원 주시고자 택한, 진정한 이면적 유대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바울은 오직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믿고 영접한 그들이 이면적 유대인이 될 수 있고, 할례 또한 몸에 하는 할례가 아닌 마음에 하는 할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할례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마음에 하는 할례란 무엇인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1~12)
사도 바울이 언급한 ‘마음에 하는 할례’는 그리스도의 할례로서 세례 곧 침례를 뜻한다. 사실 할례와 침례가 예식의 모양은 다르지만 의미에 있어서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할례로 정결함을 받아 이방인과의 구별을 둠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과 침례로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 두 예식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하지만 두 예식이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할례와 침례가 병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할례가 가지고 있는 제한성 때문이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만 가지고 있다. 이방인이라도 할례식을 통해 유대인이 될 수 있었다. 유대인이 된다는 것이 곧 선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침례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그동안 하나님께 지었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예식이다. 해서 구약의 할례식으로는 온전한 정결함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은 점차 사라지고 결국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완성되었다. 다시 말해 모세의 율법인 할례가 그리스도의 율법인 침례로 완성된 것이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7~13)
첫 언약인 모세의 율법이 흠이 있어 새로운 언약을 주셨다. 할례로써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는 있어도 그동안 지었던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흠 때문에 새로운 언약인 그리스도의 율법을 주셨고 그 가운데 침례라는 예식으로 하나님께 지었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함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율법인 침례는 도외시하고 모세의 율법인 할례를 행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바울은 굳이 할례를 행하는 자들에게 유익이 없음을 밝혔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갈라디아서 5:2)
그리스도의 율법인 침례를 준수해야 할 하나님의 성도들이 지나간 모세의 율법인 할례를 지켜 행하므로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무익한 것으로 돌려버린 것에 대해 바울은 책망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표가 되는 ‘물’은 바로 침례다. 이는 우리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만나서 천국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에 할례를 행함으로 육신의 축복을 받았다면 우리는 침례를 행함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이르는 영적 축복을 받게 된다.
구약의 할례는 결국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침례로써 완성되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1~22)